산헤드린(sanhedrin)       관련항목 : 공회
헬라어 '쉬엔드리온'의 번역으로서, '쉰'(함께)과 '헤드라'(자리)의 합성어에서 나온 말이며, '함께 둘러앉다'는 뜻이다. 이 헬라어를 히브리어화하여 '산헤드린'이라고 불렀다. 유대의 최고 의결 기관(의회, 법정)으로서 그 구성은 70 - 72인이며, 모세가 70인 장로들을 세운 것으로부터 기원되었다(민 11:16-24). 그 후 이것은 포로 귀환 후에애 에스라에 의해 재소집되었다. 그러나 제도화된 산헤드린의 전신(前身)은 포로기 직후에 제사장과 귀족과 장로(長老)들에 의한 통솔력과 재판권에 기인한다(스 5:5-17; 느 2:16; 7:5). 그 후 안디옥 III세(B.C. 223 - 187)의 포고령에 의해 제정된 유대인 원로원(게루시아) 제도와 결합하여 산헤드린 공의회가 정착하였다.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은 1인의 대제사장(의장), 제사장 계층의 사두개파 24명, 백성(각 지파)의 대표자들(장로들) 24인,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 22명으로 되어 있었다. 율법을 해석하고 종교 재판을 주관하며, 성전의 치안을 유지하는 문제들을 비롯해 종교문제, 세금문제, 민사형사 사건의 재판, 국정 일반에 관한 관건들을 의논하고 판결한다. 산헤드린 공회는 아침 번제 드리는 일출부터 저녁 제사드리는 일몰까지 사이에만 열리며, 안식일이나 야간에는 소집되지 않는다.
신약에서 산헤드린의 활동은 예수님의 재판에서 잘 볼 수 있으며(마 26장; 막 14장; 눅 22장; 요 19장), 복음서들은 당시의 산헤드린의 불법과 모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마 12:14; 막 3:6; 요 11:53). 그 후에도 산헤드린은 초대(初代) 교회(敎會) 박해의 근거지로서 존속했다(행 4:5-22; 5:17-42; 고후 4:9). 그러나 A.D. 66년 유대인의 반란 결과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