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使徒) 바울(Paul)       관련항목 :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길리기아(Cilicia)다소에서 출생하였으며, 바리새파 유대교(Judea敎)를 신봉하는 상류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바리새인이면서도 율법학자(律法學者)였으며, 힐렐 학파인 가말리엘의 제자였다. 당시 다소가 로마에 병합되었기 때문에 그는 로마 땅에서 태어난 셈이 되어 로마 시민권자이었으며 4개 국어에 능통하였고, 본명은 '큰자'를 의미라는 '사울'이었다. 그는 스데반순교(殉敎) 때(A.D. 33년경) '청년'으로 표현되고 있고(행 7:58), 빌레몬서 1장 9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늙은이'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은 60세 정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바울은 A.D. 5-10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깨달은 바 되어(행 9:3-9) 오히려 예수를 전파하는데 크게 앞장 서면서 '작은자'라는 뜻의 로마식 이름인 '바울'로 불렀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주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福音)을 전파한데 비해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크게 전파하였다.
사도 바울은 A.D. 43년 이후부터 건강이 나빠졌는데, A.D. 50-52년 제2차 선교(宣敎) 여행 때 병이 나서 갈라디아(Galatia)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곳에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는 병이 나서도 선교 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바울은 고질병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교만(驕慢)해질까봐 주(主)께서 몸에 가시로 찌는 것 같은 병을 주셨다고 고백한다(고후 12:7). 이 가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특이 체질이라고도 하고 간질(癎疾)이라고도 하며(이것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사단(Satan)사자(使者)'라고 말한 데서 추측한 것임), 다메섹 사건 회심(回心) 때 3일 동안 눈이 멀었던 사건을 근거로 안질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갈 4:13-14).
바울은 사색(思索)에 잠겨 사는 '선비'형이 아니라, 무엇이든 깨달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투사(鬪士)'형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회심(回心) 전에는 유대교(Judea敎)를 철저하게 신봉(信奉)하여 그리스도(Christ)제자(弟子)들을 앞장서서 탄압(彈壓)했고, 회심한 다음에는 예수(Jesus)님을 전하는 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정열(情熱)과 다혈질(多血質)적인 성격은 그의 편지 곳곳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그는 달변가(達辯家)는 아니었다. 그는 고린도(Korinthos) 교인(敎人)들로부터 말주변이 없다는 평을 바았고(고후 10:10), 그 자신도 이 점을 시인(是認)했다(고후 11:6).
한편 바울의 필력(筆力)은 대단했던 것 같다. 바울에 반대했던 고린도 교회(敎會)거짓 교사(敎師)들조차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담겨 있다고 평할 정도였다(고후 10:10). 사실, 그의 편지는 신앙(信仰) 체험(體驗)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 유행했던 수사학(修辭學)적인 미사여구(美辭麗句)나 논리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호소력(呼訴力)을 지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